[영화리뷰]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예전에는 영화를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던 거 같은데 요즘 뜸해진 거 같아서 다시 글 쓰면서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이 정말 많아보이지만 제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어렸을 때 본게 전부이기도 하고 일본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재밌게 읽어주세요!
첫 장면은 전쟁속 화재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때 마주하게 된 새 어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동생이었고 어머니와 닮은 모습은 마히토에게 많은 생각과 회의감을 들게 해줍니다.
새 어머니 뿐만 아니라 사실 마히토는 모순적인 상황을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었지만, 아버지가 군수업을 운영하면서 큰 부와 권력을 얻었습니다. 마히토는 이를 악용하여 학교 친구들과 다툰 후 자의로 본인을 상처입혀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적도 있었죠.
마히토는 모순적인 상황들을 겪으면서 삶의 회의감이 들었고 지금 살고있는 세상이 타락했다고 느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할 때도 친해지려고 하지 않고 진실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의 초반부에는 친구들도 7명의 할머니들도 모두 순수하기 보다는 속세에 찌든 모습을 투영시켜줍니다.
주인공 일행이 이사를 마치자마자 캐리어 속에 있는 짐을 탐하는 모습, 담배를 피우는 모습 그리고 주인공이 입학했을 때 친구들이 수근거리는 모습....
사실 이 상황들은 마히토의 눈으로 비춰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타락했고 삶에 회의적인 마히토의 눈으로는 대부분의 행동들이 부정적으로 보여졌을 겁니다.
왜가리를 만나게 되고, 왜가리는 마히토를 탑으로 데려가기 위해 거짓말과 협박을 이용합니다. 결국, 탑 안으로 들어온 마히토는 증조 할아버지가 만든 삶과 죽음이 혼재한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담배를 탐하던 탐욕스러운 할머니는 와라와라가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왜가리는 사기꾼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끝까지 마히토를 도와주는 강력한 조력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행을 하면서 모순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먹이가 없어 살기 위해 와라와라를 먹을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 놓인 펠리컨의 비애
나츠코를 구하기 위해 증조 할아버지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축한 룰을 깨는 상황
순수하고 멍청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잔인하고 본인 무리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서슴없이 행동하는 비둘기들
전지적으로 보였던 증조할아버지는 돌과의 계약에 묶여있었고 엉성해 보이는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게 할 뿐인 상황이었고 그리고 엉성해보이는 구조물이 사실은 탑의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규칙들이라는 점
강력하고 리더십이 있는 비둘기 대왕이 구조물을 빼앗아 질서와 규칙을 수정하지만 너무나도 엉성해 금방 무너져버린 점
그리고 탑 속에 있던 존재들은 바깥으로 나가면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세상이 무너지자 펠리컨들은 먹이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비둘기들은 규칙과 질서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며 자유를 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탑 속에서 모순적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주인공은 틀에서 벗어나 비로소 본인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면도 있다는 걸 깨닫고, 모순적인 상황이더라도 진실되게 행동하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보다보면 감독 본인의 생각들이 영화속에 많이 녹였다는 느낌을 줍니다.
삶의 대부분이 모순적인 상황이지만 그런 경험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걸 전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피해 만들어진 탑 속 세상이 사실은 더 큰 모순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마히토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깨닫게 만들어주고 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들어주게 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감독이 왜가리를 강력한 조력자로 설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왜가리는 사기꾼이라는 뜻도 있지만 환생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순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마히토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왜가리를 설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